한국식 영어 교육에서 탈출하는 방법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4편
'축복받은 줄 알아라.' '부모님께 감사해라.' '꿈만 같은 기회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라.'
중학생 때부터 중국과 미국에서 유학했던 나는 이런 말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었다. 한국을 떠나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삶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너는 부모님 잘 만나서 유학이라는 혜택을 받는 거야'라는 메시지. 이 나라를 떠나 공부하는 것이 왜 평생 감사해야 할 수준의 행운일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내가 처음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유학만이 외국어를 잘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라 많은 사람들이 조언했고, 그만큼 한국의 영어 교육에 대한 신뢰가 낮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공교육을 받은 학생 대부분은 영어를 자신 있게 구사하지 못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식 시험 영어'를 외우는 학생 vs 영어권 환경에서 '실제 쓰이는 영어'를 터득하는 학생. 높은 확률로 이 두 사람은 '영어 못하는 사람' 그리고 '영어 잘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살아간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두 학생은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해 적응했을 뿐이다.
글로벌 도시, 글로벌 인재, 글로벌 기술. 우리나라의 정부, 학교, 기업 모두 '글로벌'이라는 단어에 집착한다. 이토록 뭐든지 '글로벌'하게 하고 싶어 하는 국가에서 왜 교육만큼은 '글로벌'하게 하지 않을까 의문이다. 12년간 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했는데, 왜 이 나라의 수많은 어른들은 영어 공부에 또다시 시간을 투자해야 할까. 한국 영어 교육에 혁신이 없는 것이 답답하고, 나 역시 근본적인 변화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 와중에 영어는 사회 계급 차이의 대표적인 요소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말도 안 되는 학비"라며 기삿거리로 쓰이는 영어유치원이나 국제학교의 인기는 식을 틈 없이 뜨겁다. 결국 한국식 교육에서 벗어나 영어로 공부할 '혜택'의 값은 최소 수천만 원이다. 그만한 현금이 없다면 수십 년간 실패를 반복한 최악의 영어 교육 환경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제대로 배우고 싶은 학생에게 무능하고 발전 없는 시스템은 감옥과 다를 바 없다.
집안에 수천만 원 여유자금이 없어도, 의지만 있다면 진짜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은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난 이제 정부가 아닌 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희망을 품어본다. AI로 맞춤형 영어 과외를 제공하려는 회사는 Speak, Univerbal, Toko, Loora, Elsa, Talkpal 등 이미 수십 개가 있다. 게다가 이미 Hume AI와 같은 회사는 인간과 같이 감정을 담아 이야기하는 모델을 상품화하는 중이다.[1]
학생에게는 더 많은 영어 교육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 '수능을 위한 영어'를 떠먹이는 폭력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AI가 웬만한 과외 선생님보다 '실전을 위한 영어'를 더 잘 가르칠 시대가 눈앞에 있다. 대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문법, 표현, 단어 선택을 교정하는 과외 로봇이 시장에 나온 이상 영국인 영어 선생님도 못 푸는 문제 풀이에 시간을 낭비하라 강요할 순 없다.
한국식 영어 교육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티켓값은 100배 저렴해질 것이다. 인터넷과 컴퓨터만 있다면 누구나 단돈 몇만 원에 재벌집 자식 부럽지 않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세상. 미국식 커리큘럼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Khan Academy만 봐도 멀지 않아 보인다.
물론 OpenAI, Google, Anthropic, Perplexity와 같이 굵직한 회사도 있다. ↩︎
👀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레터를 쓰면서...
미국에서 유학하던 고등학생 시절, 중국인보다 더 많은 한국인 유학생을 보며 이 작은 나라에서 왜 이렇게 많은 학생이 유학을 선택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었어요.
가끔 제가 유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상상합니다. 일단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남들이 좋다는 대학에 가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또 다른 탈출구를 열심히 찾아봤겠죠. 점수를 높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우울감에 빠져 살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유학을 안 갔어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을 것 같아요. 이것이 바로 어른들이 말하던 '혜택'이 아닐까 싶어 참 씁쓸하네요.
⛴️ 작은배 이모저모
- 강소팟 18화가 업로드됐습니다! 작은배가 존경하는 마음의 실루엣 이혜경 사장님과 일과 삶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눴어요. 인터뷰 진행은 소신이 담당했으며, 저(강단)는 옆에 앉아 혜경 사장님의 이야기에 감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강소팟은 애플 팟캐스트, 스포티파이,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 🚏📚🥪💻 다 읽은 책 정거장 2 후일담을 발행했습니다. 작은 공간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득 차 있던 시간이 꿈만 같았어요. 다시 한번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 <책과 나> 3-4월 모든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4월 이후 <책과 나>는 약 3개월간 잠시 멈출 예정입니다.
- 소신의 <글 쓰는 아침> 라이브. 드디어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프로젝트 완수를 축하하며, 소신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첨부합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써 보자.” 다짐하고도 좌절한 것이 수십 번이었어요. 대대적으로 내걸지 않으면 말뿐인 하루가 계속될 것 같아서 [글 쓰는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하루 남긴 했지만) 50일을 채우고 나니 “이제 정말 매일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은은한 압박감을 느끼며 지속한 보람을 느낍니다.
내일 [글 쓰는 아침] 마지막 유튜브 라이브에 함께 해주세요! 아침 6:30-7:30 한 시간 동안 조용히 글을 쓰고, 마지막에 간단히 인사를 나눕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도 저희는 아침 글쓰기를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에요. 더 많은 분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창작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는데요. 이 소식도 차차 전해 드릴게요.
+ 매일 아침을 저와 함께 열어준 댓글창 친구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제 노트북 주변을 둘러싸는 귀여운 방해자, 두 고양이에게 프로젝트 완수의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