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없이 용감한 결정 내리기

<도전을 위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1편

용기 없이 용감한 결정 내리기
흐릿하게 보이는 글자 '치지레이지'

우리 부부가 운영했던 식당 치지레이지의 마지막 일주일은 내 인생에서 밀도와 순도가 가장 높은 순간이었다. 손님과 주고받은 안부와 작별이 모두 애틋하게 기억나는데, 그중에서 어떤 대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 용감하신 것 같아요.”라는 손님의 말이 특히 그렇다. 식당을 그만두고 출판사를 시작할 거라는 글을 먼저 읽고 오신 단골 손님의 응원이었다.

식당이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손님이 우리의 선택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지지해 준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나는 제대로 된 리액션을 하지 못했다. 지난 1년 반의 손님 응대 경력이 무색할 만큼의 뚝딱거림이었다. 다가올 인생이 무서워서 겁에 바짝 질린 상태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나에게 '용감'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낯설기만 했다.

영업 종료 공지를 내기 3일 전까지도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앞날이 무서워서 울었다. 낮잠을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강단과 대화를 나눠도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불안과 우울감이 평소와는 달라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떠올라서 당시에 생각을 정리한답시고 끄적였던 메모를 다시 꺼내 보았다. 내 마음을 스스로 달래기 위해 쓴 자문자답이었는데, 참고로 메모의 제목은 ‘지금 내 머리가 어지러운 이유’다.

지금 내 머리가 어지러운 이유
1. 잘할 수 있을지 무서워서?
2. 치지레이지를 그만두는 게 아쉬워서?
3. 당장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4.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5. 내 이 고민과 괴로운 마음을 아무도 몰라줘서?

엉엉 울며 메모를 적다 보니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두려움이 명징하게 보였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치지레이지를 사랑했는지 깨달았다. 이렇게나 사랑하는 일을 덜컥 그만두어도 되는 걸까 의아해질 정도였다. 영업 종료 공지를 보고 손님들이 보낸 메시지에 답장을 쓰면서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언젠가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한 손님이 내 손을 꼭 잡고 아쉽다며 눈물을 글썽였을 땐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확신하기까지 했다. '영업 종료는 사실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꾸면 너무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남몰래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볼 정도였다.

용기의 사전적 정의에는 ‘겁내지 않는 기개’라는 말이 담겨 있다. 기개의 뜻은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라고 한다. 틀린 결정을 내린 건 아닐까. 앞으로 마주할 불확실성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분명 겁에 질려 있었고 씩씩하거나 굳건하지도 못했다. 그런 내게 '용감하다'는 말은 듣기 민망한 칭찬이었다. 고맙다고 삼키지도, 아니라고 부정하며 내뱉지도 못한 채 맺혀버린 손님의 말을 나는 종종 되새김질하곤 했다.

용기 없이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 가능할까?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그때의 내가 그랬다. 용기라고는 한 톨도 없는 사람처럼 바들바들 떨면서도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으니 나는 용감한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도 겁을 냈으니 용감하지 못한 사람인가. 용기라는 건 뭘까. 도전할 용기는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걸까. 나는 과연 여든 살이 되어서도 도전을 계속하는 용감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내가 그렇게도 무서워했던 ‘앞날’이 지금 내가 사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일에 빠르게 적응했고, 그 덕분에 불확실성이나 후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게 지낸다. 바스스 무너질 정도로 겁에 질렸던 것이 불과 4개월 전의 일이지만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그때의 두려움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친한 친구들에게 떠밀려 당선된 반장이 한 학기가 끝날 무렵엔 어엿한 반장 노릇을 하게 되는 것처럼, 용기 있는 선택을 고집하고 보니 어느새 나도 조금은 용감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러고 보면 너무 용감한 나머지 모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사람에게 용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용기의 진짜 효력은, 용기가 없음에도 용감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 여러분이 가장 큰 용기를 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안녕하세요, 작은배 소신입니다. 새로운 질문 <도전을 위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시리즈의 서문을 열어보았는데요. 저는 용감한 사람, 리스크를 지고 믿는 바를 쭉 밀고 갈 줄 아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존경해요. 이와 가까운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서 앞으로 남은 세 편의 글도 열심히 써보려 합니다.

용기 없이 굴러가는 삶이 있을까요? 제가 오늘 보내드린 글을 읽고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른 개인적인 경험담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끌어모아 한 발짝 내딛는 순간. 서로의 경험담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용감해지는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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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책과 나> 3-4월 모든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4월 이후 <책과 나>는 약 3개월간 잠시 멈출 예정입니다. 집중해서 끝내야 할 프로젝트들 잘 마무리하고 다시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