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장소는 우리집입니다

가장 우리다운 공간인 집에서 첫 손님을 맞이했다.

팝업 장소는 우리집입니다

경험 없이 시작하다

‘다른 식당에서 알바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어?’

주방에서 일해본 적 없는 두 사람이 가게를 연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라고 이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집에서 공부하고 연습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경험 없는 우리가 우습게 보이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알바 공고를 기웃거렸고 쿠킹 클래스에 전화해서 수업료를 묻기도 했다.

하지만 긴 고민 끝에 우리는 별다른 이력 없이 시작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직접 설계한 경험’을 통해 배우기로 했다. 자격증이 성공을 담보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남의 노하우를 답습한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믿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할 마음만 있으면 필요한 공부와 훈련은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

팝업을 집에서?

어느 날 당근마켓에서 직접 구운 빵을 무료로 나누는 분을 알게 됐다. 언젠가 빵집 주인이 되기를 꿈꾸며 집에서 구운 빵을 나누는 모습이 멋지게 보였다. 이웃들의 감사 인사로 가득 찬 프로필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잖아?’

그렇게 우리는 가장 우리다운 공간인 집에서 첫 손님을 맞이하기로 했다. 손님이 챙겨오신 다회용 용기에 음식을 담아드리는 형식의 팝업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10팀에게 20인분 신청을 받았는데, 이 정도면 진짜 가게를 열고 난 후 목표 일 판매량의 1/3쯤 되는 양이었다. 분명 우리가 필요로 했던 실전 연습이었다.

첫 번째 메뉴, 가지 바베큐 샌드위치. 우리가 지향하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맛'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피클부터 소스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다.
두 번째 메뉴, 비건 칠리. 3종의 콩으로 고기를 대신했다. 자세한 레시피는 블로그에 올려두었다.

하루 열리고 마는 팝업이지만 제대로 해야 했다. 물론 20인분 이상 준비하는 것이 처음인 만큼 두려움도 컸다. 하지만 그래서 더 세심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기획했다. 경험이 주는 안정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만 했다.

우당탕 대량생산

우선 메뉴의 레시피를 엑셀로 정리하고 원재료 가격을 연동해서 메뉴별 원재료비를 파악했다. 덕분에 장보기 계획을 쉽게 세우고 메뉴의 판매가를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엑셀 시트는 앞으로 있을 메뉴 개발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주방에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고민한 것 역시 큰 도움이 됐다. 조리 동선 관련 영상을 보며 공부했고 이에 맞춰 주방 구조를 다시 짰다. 당일 손님이 오면 어떻게 응대할지, 방문 전과 후 어떤 안내를 드릴지 기획하면서 CHEESYLAZY가 주고 싶은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기도 했다.

팝업을 기념하며 만든 엽서. 소신이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서 편지와 함께 선물로 드렸다.

무엇보다 큰 자산은 손님들이 남긴 피드백이었다. 놀랍게도 팝업에 와주신 모든 분이 의견을 전해주셨는데 덕분에 둘이서 고민할 땐 어렵던 문제들이 많이 명쾌해졌다. 과분한 격려와 응원을 받으면서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불안함은 어느새 뿌듯함으로 변해 있었다.

제빵실이 된 손님방

지속 가능한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발전해야 한다. 행주 빠는 일마저 공부와 훈련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에게 배운 것'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제철에 맞는 재료가 무엇인지, 무엇이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감칠맛을 내는지, 재료마다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없을 영역에서 '적당히' 할 수는 없다.

최근에는 제빵 설비를 구입하고 빵을 굽기 시작했다. 오븐, 발효기, 작업대로 채운 우리만의 '제빵 학원'을 집 안에 들인 것이다. 손님방은 이제 제빵실이 되었고, 우리는 원하는 빵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누군가 정해둔 규칙 안에서 경쟁하는 대신 CHEESYLAZY 기준에 맞춰 발전할 것이다. 화려한 자격증이나 이력서 없이도 우리의 빵 맛은 매일 좋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