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행복한 걸까?

내 삶에 별 다섯 개를 남겨본다.

난 왜 행복한 걸까?
행복은 감정이 아니다. 감정은 행복을 나타내는 증거에 불과하다.
Arthur C. Brooks

치지레이지를 시작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일만 해서, 유명해져서 그런 건 아니다. 하하호호 매일이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난 최저임금보다 적게 벌고(그나마 번 돈도 새로운 프로젝트에 다시 투자하는 것 같다), 18살에 산 옷을 지금도 입고, 가끔 우울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난 왜 행복한 걸까?

성취감

오픈 초기, '빵이 질기다'는 피드백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택도 없는 실력으로 구운 빵을 바라보며 부끄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 정도면 괜찮다'는 최면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 당장 나아져야 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더 좋은 빵을 굽는 건 불가능했다. 매일 조금씩 나아졌고, 시간이 쌓이자 어느새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빵을 굽게 되었다.

가게를 오픈하고 벌써 1년 반이 지났지만, 잘하고 싶다는 의지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좌절 끝에 얻어낸 성취감이야말로 행복과 가장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얼마 전 시작한 출판과 팟캐스트처럼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도'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은 내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목적의식

4년 전 난 인턴이었다. 강남역으로 향하는 출근길에 우르르 쏟아지는 회사원을 지나치면서 '내가 없어도 세상 잘 돌아가겠다' 생각했다. 회사 생활은 만족스러웠지만, 내 업무는 다른 누군가가 언제든 대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잘 하고 싶다는 욕심과는 달리 이 일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는 회사의 메시지에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다르다. 손님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내 콘텐츠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삶에 목적의식을 부여한다. 어쩌면 종교적 믿음과 비슷할 것 같다. 내 삶에 쓰임이 있기에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감각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

관계

치지레이지를 시작하고 삶에 귀중한 관계가 많이 생겼다. '어떻게 이렇게나 친절할 수 있지' 싶은 손님도 있고, 강소팟에 게스트로 나와 마음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눠주는 멋쟁이 사장님도 있다.

일을 통해 존경할만한 사람을 꾸준히 만난다는 점이 놀랍도록 감사하다. 홀로 보내는 평화로운 시간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했던 즐거운 기억은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행복에 보탬이 된다.

만족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숙제'가 아니다. 나에게 높은 점수나 어른의 인정은 더 이상 성장을 뜻하지 않는다.

치지레이지로 이루고 싶은 목표야 많지만, 이루지 못한다고 불행할 이유 또한 없다. 난 지금도 충분히 만족한다. '제주에서 샌드위치샵 운영하며 팟캐스트와 뉴스레터 발행하는 사람'인 내 삶에 별 다섯 개를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