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화해의 편지를 쓰자

<화 좀 안 내고 살 수 없을까?> 3편

우리 이제 화해의 편지를 쓰자

편지를 쓰게 된 이유

민석아, 안녕! 나 은비야. 생일이나 기념일이 아닌 날 쓰는 편지는 참 오랜만인 것 같아. 사실 결혼하고 나서는 언제 편지를 썼는지도 까마득하네… 헤헤.

이건 내가 너에게 보내는 화해의 편지야. 너도 잘 알겠지만, 나는 화가 나면 주체하지 못하고 나쁜 말을 쏟아내잖아. 그래서인지 어찌저찌 화해하고 우리 사이가 다시 좋아져도 계속 다툼의 순간을 곱씹게 되더라고. 화난 내 말투, 너에게 상처 줄 말을 정확하게 골라내던 이기적인 마음.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미워지고 나한테 회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걱정해.

나는 너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어. 내가 화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앞으로 너에게 좋은 마음만 전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줘. 그게 오늘 내가 화해의 편지를 쓰게 된 이유야.

싸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안 좋았던 감정을 모두 풀어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서로의 마음을 보살피겠다고 다짐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 우리의 관계를 건강하게 지키는 것만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부라는 사실을 강단에게 정확히 전해야 했다.

칭찬, 감사, 존중

우리는 최근 싸운 적 없고 사이도 좋다. 사과할 것도 없는데 화해의 편지를 쓴다니. 이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금’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용서를 비는 사람이 없어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사과가 아닌 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고, 화해의 편지가 대화를 위한 좋은 시작점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의사소통의 문이 열려있을 때 우리가 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틱낫한 스님의 말을 기억하며 편지를 이어나갔다. 강단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활짝 열 수 있을까? 내가 강단에게 듣고 싶은 말을 떠올려 봤다. 칭찬, 감사, 존중.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다정한 말들은 항상 내 마음을 사르르 녹게 했다.

내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강단의 칭찬, 평소 닮고 싶다고 생각한 모습, 나에겐 없지만 강단은 갖고 있는 멋짐. 이런 것들을 편지에 나열하다가 깨달았다. 싸우면 마음이 괴로워지는 이유는 ‘이렇게 소중한 사람을 화에 휘둘리다가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강단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금세 행복해졌다. 그리고 화해의 편지를 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화났을 때 내 행동

이렇게 소중한 너에게 나는 왜 그랬을까. 금방 후회할 말들을 나는 너무 쉽게 해버렸어.

떠올려 보면, 나에겐 항상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화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사과는 네가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 이유를 모르는 널 보면 더 화가 났고. 내가 화나면 얼마나 편협하게 변하는지 이제 알겠지?

대화가 아닌 편지를 선택한 이유는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내 입장을 차근차근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단의 마음을 추측하기 보다는 내 생각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 나를 서운하게 만든 강단의 행동을 언급하는 대신 내가 느낀 감정을 전하는 게 더 옳다고 느꼈다.

스스로의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돌아보려 노력하면서, 화가 나면 내 마음속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세하게 썼다. 다툴 때 강단의 행동과 말을 내가 단박에 이해할 수 없듯이,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언젠가 또다시 얼굴 붉히는 일이 생겨도 내가 강단을 사무치게 미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다짐하고 도움 청하기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니 우리 서로 용서하자'는 식의 유야무야 전략은 택하지 않기로 했다. 적당히 알아서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뻔뻔하게 요청하는 건 더 싫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말뿐인 다짐이 아니라 진짜 행동을 위한 지침이었다. 변하고 싶다는 내 강한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부탁하고 싶은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짜증 나' '화나'처럼 강한 표현으로 쏘아붙이지 않으려 노력할 거야. 표현을 가볍게 하면 마음속 화도 빨리 사라지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생각해 본 표현이 '섭섭하다'는 건데, 좀 나은 것 같지 않아? 앞으로 내가 '섭섭하다'고 한다면, 은비 마음이 어떻길래 그러나 한 번씩 들여봐 줘. 그것만으로도 나는 한결 나아질 거야.

화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 너무 화를 꾹꾹 누르면 언젠가 빵 터지는 것 같거든. 참다가 욱해서 크게 싸우는 것보다는 작게 자주 표현하면 어떨까? 큰 화보다 작은 화가 다루기 쉬우니까. 내가 전보다 별거 아닌 거에 화내는 것 같다면 '은비가 크게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나 보다' 하고 조금만 이해해 줘. 이렇게 내 마음속 화를 줄여 나가볼게.

답장으로 듣고 싶은 내용

이전 글에서 나는 ‘싸우고 화내는 방법에 대해 터놓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싸움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강단과 내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화해의 편지는 대화의 시작점일 뿐이다. 그러니 만약 나처럼 화해의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면, 상대방에게 답신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당당히 행동을 촉구하자. 마음에 변화를 만들 틈을 내어 달라고 요구하자.

민석이도 화해의 약속에 동참할 뜻이 있는지 궁금해. 화가 난 너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의 지나간 싸움에 대해 못한 말이 있다면 이제라도 듣고 싶어.

괜찮다면 나에게 답장을 써줄래? 편지 대신 시간을 정해서 대화를 나눠도 좋아.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항상 너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 이제 화해의 편지를 쓰자

‘사랑하는 너에게 나는 화를 내고 싶지 않아. 그러니 나를 도와줘!’ 강한 의지를 전하는 게 어쩌면 화해의 전부라는 생각도 든다.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내 손을 잡아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혹여나 외면받더라도, 다 쓴 편지를 전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나는 화해의 편지를 쓰는 동안 마음 깊은 곳에 뭉쳐있던 화가 한결 느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방과 화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를 용서하고 나와 화해하는 일이다. 그러니 처음 기대했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이 아닐까.


💌 지난 일주일간 잘 지내셨나요?

이번 주에 저희 두 사람은 2박 3일 짧은 서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단연 기억에 남는 건 용산 아이맥스에서 본 영화 <듄 파트 2>였어요. 혹시 아직 못 보셨다면 <듄 파트 1>을 먼저 보고 얼른 영화관으로 달려가시길 추천합니다. 정말 재밌더라고요.

이번 레터로 <화 좀 안 내고 살 수 없을까?> 총 3편의 시리즈를 완결지었습니다. (짝짝짝!) 처음으로 긴 호흡의 글을 쓰면서 제 글의 부족한 부분도 알게 되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는 의욕도 얻었어요. 모두 작은배의 글을 소중하게 읽어 주시는 구독자님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글에 대한 피드백과 후기, 언제나 환영입니다! 가벼운 안부를 남겨 주셔도 좋아요.🌞


⛴️ 작은배 이모저모

  1. 강소팟 16화를 업로드했습니다. "빈티지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빈티지 샵 사장이 되는 것"이라 말하는 '유에서유' 유우열 사장님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랑하는 일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물었습니다.
    * 강소팟은 애플 팟캐스트스포티파이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2. 다 읽은 책 정거장 2 셀러 모집 마감했습니다. 신청서에 적혀있는 책방 소개만 봐도 가슴이 쿵쾅쿵쾅! 무척 설레었습니다. 작은배 사무실을 가득 채울 아주 작은 책방들은 3/30 (토) ~ 3/31 (일) 이틀간 구경하실 수 있어요!
  3. <책과 나 3-4월>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어제 3월 첫 모임을 진행했는데요. 오랜만에 긴 시간 집중했더니 책을 1권 반이나 읽었습니다. 아무런 방해 없이 책 읽는 토요일, <책과 나> 신청할 수 있는 일정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소신의 <글 쓰는 아침> 라이브 오늘이 22일째입니다. 50일 완주 목표의 절반을 향해 가고 있는데요. 함께 하실 분은 아침 6시 30분 작은배TV 라이브에 접속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