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영어를 배워야 할까?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1편

우리는 왜 영어를 배워야 할까?
@Macalester College

15년 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 시절 내 영어는 평범한 한국인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미국인 교장 선생님을 만났을 땐 ‘헬로우’라 중얼거리며 90도 인사를 했고, 자기소개를 해야 할 것 같을 땐 ‘아이 라이크 사커’를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몇몇 미국인 친구들이 먼저 다가왔지만, 아무것도 못 알아듣는 나와 친해지긴 어려웠다. 우울하고 외로웠다. 비웃음거리가 되는 게 죽도록 싫었다.

어떻게든 눈앞에 쌓인 숙제와 시험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적응에 실패하고 살아남지 못한다면 내 건강과 성적이 엉망진창이 될 거라 직감했다. ‘이러다 내 인생 망한다’라는 새로운 형태의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면 20분짜리 미드의 영어 자막을 네이버사전에 복붙하며 공부했다. 고등학생 제이슨 강에겐 영어를 알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1] 나에게 영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유학을 다녀온 모두가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다. 미국에 10년 살아도 기본 문법을 틀리는 사람이 있고, 영어 울렁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 공기를 마신다고 영어가 술술 나오면 좋겠지만, 어떤 환경이든 혼자 집중해서 공부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건 똑같다. '너는 유학 다녀왔잖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난 영어를 터득하는데 유학은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영어 공부 어떻게 해야 돼?'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공부법을 논하기 전 영어가 삶에 왜 필요한지 고민해 보라고 답한다. 더 나은 점수, 취업, 여행을 위한 도구로써 영어를 공부하겠다고 다짐하고 금세 그만둔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내가 만약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면, 마라톤 전 신발 끈부터 묶는 마음으로 영어를 배워야 할 이유부터 글로 정리할 것이다.

비싼 돈 들여 미국에서 문학을 전공한 나도 매일같이 모르는 단어를 찾아본다. 그만큼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터득하고 구사하는 건 너무나 어렵다. 영어가 내 삶에 중요하다는 확신 없이 학원비를 결제하거나 앱을 구독한 후 후회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냥 히말라야산맥을 올라가는 사람은 없다. 영어 공부라는 높은 산을 그냥 오르면 금방 지겨워질 확률이 높다.

내가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

나는 제주에 살고 있지만 영어로 읽고 쓰는데 그 어떤 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영어 과외로 돈을 버는 것도,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영어로 읽고 쓰며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는 삶의 형태에 무척이나 만족하기 때문에 매일 공부한다. 이처럼 영어를 배워야 할 이유는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 영어가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는 의견에 반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 세계 인구의 대략 20%가 영어를 구사하지만, 전체 웹사이트의 50% 이상은 영어를 사용한다(반면에 한국어는 웹에서 0.8%를 차지한다). 웹사이트가 한국어 콘텐츠를 제공해도, 사실상 모든 웹사이트는 영어 기반 프로그래밍 언어로 만들어진다. 안타깝지만 영어를 무시하면 인터넷의 절반 이상을 보지 못하게 된다.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유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나로서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가지만, 앞으로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 뻔하다. 인구절벽 앞에 장사 없다. 30년만 지나도 우리나라 인구는 500만 명 이상 줄어든다. 게다가 조만간 모든 학생이 맞춤형 AI 과외 선생님을 몇만 원에 고용할 수 있게 될 텐데, 어쩌면 지금 태어나는 한국인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걸 당연하게 느끼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계가 사라질 때, 영어의 중요성은 더 커질 거라 예측한다.[2]

'영어 잘한다'

또 하나의 질문에 답하고 싶다. '영어 잘한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영어를 잘하기 위해 공부한다면 어느 정도를 목표로 해야 할까? 나는 사실 '적당히 회화만 잘하고 싶다'라는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상황에 맞춰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조금 공부해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한국어로 국밥을 주문하면 '한국어 잘한다'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외국인이 한국어로 토론하고, 책을 쓰고, 발표를 한다면 '저 사람 한국어 진짜 잘한다'라고 진심으로 인정한다.

영어 공부에 별 뜻이 없다면 토익, 토플 점수로 영어 실력을 판단한다. 하지만 모국어나 외국어나 똑같다.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이 돋보일 정도로 뛰어나야 진정으로 잘한다고 할 수 있다. 너무 엄격한가 싶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어 잘하고 싶다'는 어쩌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는 목표다.

공부할 이유를 알았다면 이제 환경을 조성할 차례다.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편에서는 최대한 저렴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할 예정이다.


  1. 미국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영어 이름을 ‘제이슨’으로 지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지은 극히 평범한 영어 이름이다. 나를 뜬금없이 제이슨 데룰로라 부르던 미국인 친구가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놀리는 말이었던 것 같다. ↩︎

  2. 그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면, 한영 동시통역 또한 AI로 물 흐르듯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말에 담긴 모든 메시지를 100% 기계가 번역해서 대신 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의 한계라기보다는 통역의 한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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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강단입니다. 드디어 제주가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벚꽃이 피지 않을까 기대 중인데요. 어서 날이 따뜻해져서 티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는 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1편을 보내드렸습니다. 주제를 무엇으로 해야 하나 고민이 정말 많았는데요. 결국 제가 한 달 동안 재밌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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