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고통

<혹시 나도 도파민 중독일까?> 2편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고통

내가 도파민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곳은 유튜브 댓글창이었다. "도파민 터진다.", "도파민 중독이다." 여기서 도파민을 이야기하는 맥락은 단순하다. 이 영상을 보고 도파민이 많이 나와서 좋다던가, 너무 좋아서 계속 봤더니 하루가 다 지나가서 나쁘다는 식이다. 이쯤 되면 도파민이 터지면 좋다는 건지, 안 좋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파민에 대해 공부할수록, 도파민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만큼 도파민은 뇌에 아주 복잡하게 작용하고 그 역할의 폭이 넓어서 단순화하기엔 뭔가를 놓치는 기분이 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쩌면 도파민을 제대로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내가 이해하고 싶은 건 도파민이 아니라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도파민을 파헤치는 시간이 내가 원하는 곳에 나를 데려다줄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가지고, 지난 일주일간 도파민과 뇌과학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도파민은 잘못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도파민을 ‘기쁨 호르몬’이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도파민이 ‘즉각적인 보상’에 반응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모두 맞는 말이다.

도파민은 즐거운 활동을 할 때 분비되어 우리가 그 활동을 반복하게끔 만든다. 목표를 달성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울 때에도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덕분에 우리는 성취감을 느끼며 더 많은 목표를 이루어 나갈 동기를 얻는다. 또한 도파민은 몰입에도 영향을 준다. 목표를 이루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동을 활발하게 하고 몰입을 높여준다.

이쯤 되면 왜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보통 ‘중독’이라는 단어는 안 좋은 것 뒤에 붙이지 않나? 도파민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주고, 이런 감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다. 심지어, 도파민 자체에 중독되는 일은 없기 때문에 도박 중독, 게임 중독처럼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사실상 틀린 표현이다.

도파민에게는 잘못이 없다. 진짜 문제는 도파민이 나올 만큼 기분 좋은 행동을 그만뒀을 때 생긴다.

도파민 단식이 필요한 이유

우리의 뇌는 즐거움과 고통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취감, 즐거움, 몰입감처럼 보상을 주는 활동을 멈추면 아쉬움, 우울감, 불안감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 숏츠 하나를 보고 1만큼 즐거웠다면, 화면을 껐을 때 1만큼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엄지손가락으로 쓱 올리기만 하면 숏츠는 무한정 계속된다. 1, 2, 3, 4… 즐거움이 쌓일수록 숏츠 시청을 그만뒀을 때 나를 덮칠 부정적인 감정도 함께 쌓여간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주와 객이 뒤바뀌는 순간이 온다. 행복하기 위해서 하던 행동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불행을 피하기 위해 계속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도파민을 자극하는 활동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다른 보상적인 경험은 밋밋하게 느껴진다. 즉각적이고 강한 자극을 주는 활동에만 점점 집착하게 되고, 우리는 이런 증상을 ‘중독’이라 부른다.

나를 즐겁게 만들던 일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로 변하는 순간. 도파민이 작동하는 시스템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를 사로잡는 것은 바로 이 전세역전 현상이었다. 지갑 사정이나 건강을 해치는 수준이 아니라면 좋은 걸 계속 좋아해도 뭐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풍족하고 허용적인 나머지 내가 나를 제약하지 않으면 누가 말리지도 않는다. 심지어 일이나 운동처럼,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행동을 계속하는 경우도 많다.

즐거운 일을 멈출 필요 없이 계속할 수 있을 때 결국 문제가 생긴다. 많은 전문가들이 ‘도파민 단식’을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행동을 멈추면 느낄 부정적인 감정이 1이나 2쯤 될 때 과감히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 결핍과 제약을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도파민 작용이 과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찾아올 부정적인 감정을 직면해야 한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고통

도파민과 중독에 대한 자가진단을 위해, 아래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1.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요?
  2. 할 때는 기분이 좋은데, 그 이후에 기분이 더 안 좋아지는 일은 무엇인가요?

숏츠를 많이 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숏츠를 많이 보다가 불행해지면 문제다. 일을 많이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일하지 않는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지면 문제다. 게임을 많이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게임을 하지 않는 현실이 지루하고 낯설게 느껴지면 문제다. 질문의 초점은 특정 행동에 있지 않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 행복과 불행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모든 고민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결국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행동을 과감히 중단하고, 이어서 찾아올 부정적인 감정을 감당하기로 작정해야 한다. 나를 더 즐겁게 만들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대신, 나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 불편과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멈추고 어떤 제약을 만들어야 할까? 가만히 고민하며 리스트를 작성했다.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물건,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행동을 리스트 맨 위로 올렸다. 조금씩 이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기로 마음먹는다. 빈자리는 채우지 않은 채 가만히 둘 작정이다.


🧘 도파민 단식, 함께 하실래요?

풍요로움이 오히려 행복에 방해가 된다는 배움은 저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항상 더 많이 갖고, 많이 하고, 많이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저였거든요.

다가오는 일주일 동안 일과 삶에 몇 가지 제약을 만들고 고통을 견뎌보는 '도파민 단식' 기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생각보다 힘들 것 같긴 하지만, 고통을 견뎌야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한 번 도전해 보려고요.

이번 레터를 읽고 도파민 단식을 시도해 볼 마음이 들었다면, 어떤 제약을 만들면 좋을지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저의 후기는 다음 작은배 레터로 공유하겠습니다.😊


⛴️ 작은배 이모저모

  1. 강소팟 23화가 업로드됐습니다! (살고 싶은 곳)에 대한 강단과 소신을 나눴어요. 저희 두 사람이 살아본 도시부터 살고 싶은 곳을 고르는 수많은 기준까지. 깊고 넓게 다뤘습니다.
    *강소팟은 애플 팟캐스트스포티파이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2. 회고 맛집 작은배에서 2024년 상반기 회고 모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약 4시간가량 진행할 예정인데요. 특별히 선호하는 시간대가 있다면 꼭 알려주세요!
    1️⃣ 평일 저녁 (두 시간씩 2회로 나눠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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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일요일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