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에 여백이 없는 이유
<혹시 나도 도파민 중독일까?> 1편
# 2024년 6월 9일 소신의 글 <혹시 나도 도파민 중독일까?[1]> 1편
'나 이번 주말은 아주 고요하게 보낼 거야!'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간단한 짐을 싸던 강단은 호언장담하는 나를 보며 내심 놀랐을 것이다. '내 핸드폰 어디 있지?' 다음으로 '아, 심심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내 입에서 나올법한 말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평소 내 캘린더는 할 일 리스트와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빈틈없는 하루를 보내야만 두 발 쭉 뻗고 자는 나에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다가오는 주말만큼은 평화롭고 잔잔하게 보내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강단은 공항으로 떠났고, 그제야 나는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손에 집었다. 목적 없이 유튜브에 들어갔다가, 최근 종영했다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생각났다. 드라마 제목을 검색 창에 입력하는데 '몰아보기' 콘텐츠가 연관 검색어에 떴다. 무심코 누른 섬네일, 정신을 차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알고 보니 16부작 드라마를 4시간으로 압축해 놓은 영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요약본 없이 드라마를 완주한 적 있던가?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날 역시 4시간 요약본으로 모자라, 회차별 영상과 명장면을 찾아보며 나머지 내용을 추측해 나갔다. 끼니마저 대충 때우고 하루 종일 집에서 스크린만 보다 보니 창밖이 어둑해졌다. 일 안 하고 약속만 없으면 심심한 주말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가슴 뛰고 설레는 하루를 보낸 셈이다.
콘텐츠뿐일까. 언젠가부터 일상을 '핵심'으로만 채우려 드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제대로 끝내야 하는 중요한 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대화, 문제 발견과 해결의 반복, 새로운 사람과 생생한 깨달음. 이런 게 아니면 심심하고 가치 없다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물론,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밀도 높은 순간들을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다. 고자극 고밀도 경험을 통해 '내가 살아있구나' 스스로 감각하는 순간을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문제는 원하는 만큼 삶의 밀도를 높일 수 없을 때 벌어진다. 꽉꽉 들어찬 경험만으로 삶을 채울 수는 없기 때문에, 일상에는 항상 여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밥을 먹을 때, 잠깐 시간이 뜰 때, 샤워할 때. 이런 당연한 틈조차 가만두지 못하고 머리를 굴리거나, 팟캐스트를 듣거나, 영상을 본다. 심지어 에너지 소진량이 부족한 날에는 자기 전에 무조건 유튜브를 본다. 하루 동안 느껴야 할 자극과 보상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사람처럼, 남은 에너지를 어떻게든 소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밀도 높은 콘텐츠를 억지로 욱여넣다가 쓰러지듯 잠자리에 든다.
이런 나의 문제가 도파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도파민은 자극과 보상에 관여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라고 한다. 빠르고 즉각적인 보상과 자극에 익숙해지면 도파민 분비 체계에 문제가 생겨 중독 증상이 생긴다. 즉각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행동에 취약해지면서 그 밖에 일들은 비교적 무료하고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연히 보게 된 중독에 대한 영상을 통해 알게 된 여러 증상이 나의 요즘과 겹쳐 보였다.
산책을 다녀오지 못한 강아지가 어질러 놓은 거실처럼, 소진되지 못한 에너지는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일상에 더 많은 틈을 만들고 여백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3주간 스스로의 상태를 진단해 보고, 한없이 올라간 도파민 역치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시도해 보려 한다. 더 이상 도파민에 지배당하는 일 없이, 여유로운 하루 끝에 기분 좋은 단잠을 자고 싶다.
도파민 자체에 중독된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며,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행동이나 물질에 중독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도파민 중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
🧘 무언가에 중독된 적 있나요?
숏폼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처음 알게 된 '도파민'이라는 존재. 평소 콘텐츠 소비에 의존하는 편은 아니라서 저와 먼 단어라고만 생각했는데요. 중독의 대상을 넓게 두고 생각해 보니, 아주 남 일 같지만은 않더라고요. 하하.
'나 혹시 일중독인가?' 하는 문제의식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안함과 쾌락 사이의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보자는 마음으로 레터 질문을 정해 봤어요. 3주간 도파민에 관해 공부하면서, 멍때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혹시 독자님도 저와 비슷한 증상을 겪은 적 있나요? 방명록에 스리슬쩍 경험담을 남겨주시면 저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 작은배 이모저모
- 6월의 <창작하는 아침> 일주일 회고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창작한 것을 가볍게 공유하고, 창작으로 아침을 여는 노하우를 나누는 다정한 시간이었어요. 좋은 동료와 함께라면 꾸준하게 창작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 힘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 <질문 있는 사람들 2회 : 오래된 것이 좋다면 그건 왜일까?> 즐겁게 마무리했습니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고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요. 구제 옷 가게와 벼룩시장을 구경하고, '헌책방 동림당' 송재웅 대표님과 함께 오래된 물건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