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다루는 법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슬픔을 다루는 법
할머니 댁 앞 바다. 소신의 할머니는 소싯적 상군 해녀였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소신의 할머니께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만으로 아흔이신 할머니께 암 선고가 어떤 의미인지, 그 자리에 있던 가족들은 단번에 알았어요. 하지만 안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크게 아픈 곳 없이 평생 독립적으로 살아오신 할머니라 그런지, 납득하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할머니만큼은 백세까지 건강하실 줄로만 알았거든요.

의사의 권고에 따라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간병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컨디션이 좋을 때는 마음이 만조처럼 가득 찼다가, 할머니께서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시면 기분이 갯벌처럼 질척거립니다. 마음속 조수간만의 차이에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할머니와 가족들 모두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슬픔’을 작은 테마로 삼아 작은배 레터를 꾸려 보내드립니다. 병원에서 생활하며 든 생각과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담았어요. 현재 진행형인 일을 써내려가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소신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는 생각이 이것뿐이라서요. 최대한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 오늘 작은배 레터에 담긴 이야기

1.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간병사: 병원에서 먹고 자며 느낀 것
2. 슬픔 대처법은 모두 다르니까: 책 ≪슬픔의 위안≫
3. 작은배 소식 모음: 강소팟 28화 (협업)에 대한 강단과 소신, 직접 만든 갈옷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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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만나기 어렵고, 간호사는 너무 바쁩니다. 반면에 간병사는 환자 곁을 지키고 있어요. 돌봄은 죽음보다도 더 낯선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질병을 얻거나 생애 말기 단계에 접어들면, 누구에게 어떤 돌봄을 받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큰 부분인 것 같아요. 다정하고 전문성 있는 간병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여러 번 봤습니다.

소신의 엄마는 약 20년 전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받고 오랜 시간 병원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때 만난 간병사 춘자 이모는 지금도 엄마와 함께하고 있어요. 춘자 이모는 소신의 가족에게 단순 간병사가 아닙니다. 엄마를 대신해 녹색어머니회 깃발을 들고 학교 앞 횡단보도에 서 있던 사람도, 소신을 데리고 목욕탕에 다닌 사람도 춘자 이모였으니까요. 물론 이런 일이 간병사의 주 역할은 아닙니다. 하지만 춘자 이모의 배려와 도움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던 소신의 가족에게 그 무엇보다 진실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할머니와 병원에서 생활하며 멋진 간병사를 여럿 만났습니다. 대변을 보지 못해 답답해하는 할머니를 보고 유제품을 조금씩 챙겨 먹으라 조언한 건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옆 환자를 돌보는 간병사였습니다. 침대가 높아 할머니가 오르내리기 힘들어할 때 간호사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만, 간병사는 침대에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그들이 건넨 도움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따뜻했습니다. 슬픔을 견디고 있는 저희에게 딱 알맞은 온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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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강단의 아버지가 긴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시간을 함께하며 강단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슬플 때 강단은 책을 읽으며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이었어요.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다른 사람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애도해야 하는지. 책, 팟캐스트, 강연을 보고 들으며 강단은 현실을 이해하고 감당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할머니의 여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소신의 머리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집에서 수건이랑 물티슈를 더 챙겨와야겠어.' '나중에 호스피스로 할머니를 모시려면 필요한 서류가 뭐지?' 이상할 정도로 빠릿빠릿해진 스스로가 낯설 정도였어요.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매달리는 것. 이것이 슬픔에 대처하는 소신의 방법이라는 것을요.

슬플 때 입을 꾹 닫는 사람이 있는 반면,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엉엉 울고 금세 회복하는 사람과 달리, 뒤늦게 북받친 감정 때문에 무너져 내리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슬픔에 대처하는 방식에 맞고 틀림이 없음을 책 ≪슬픔의 위안≫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이 책은 사별로 슬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산문집인데요, 슬픔이라는 감정을 평가 없이 긍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담담하게 위로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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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팟 28화: (협업)에 대한 강단과 소신

‘우리에게 맞는 협업 방식은 무엇일까?’ 오랜 시행착오에서 얻은 배움과 단단한 신뢰 덕분에, 강단과 소신은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소신이 오래 자리를 비워도, 무리 없이 뉴스레터와 팟캐스트를 발행할 수 있는 것 역시 두 사람의 멋진 협업 덕분이에요.

팟캐스트 발행 주기를 격주에서 매주로 변경하면서, 강단과 소신이 일하는 방식에도 여러 변화가 생겼는데요. 이참에 협업에 관한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할, 책임, 소통, 피드백, 신뢰. (협업)을 둘러싼 여러 주제를 폭 넓게 다룬 강소팟 28화는 애플 팟캐스트⁠⁠⁠⁠스포티파이⁠⁠⁠⁠유튜브⁠⁠에서 지금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직접 만든 갈옷 자랑

제주 전통 의복 ‘갈옷’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당근에서 감물을 사다가 흰 옷을 염색했는데요. 만드는 과정은 참 간단했어요. 땡감을 즙낸 초록색 감물에 옷을 담갔다가 햇볕에 말립니다. 다 마르면 옷에 물을 뿌리고 다시 말립니다. 물을 뿌리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할수록 갈색이 짙어져요.

처음엔 이렇게 색이 옅었습니다.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반복해서 물을 뿌렸더니…
이렇게 예쁜 갈옷이 되었습니다.

시작부터 완성까지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뭐 이런 걸 굳이 해 입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직접 만들면 더 특별해져요. 셀프 인테리어, 나만의 웹사이트, 뜨개와 바느질. 취향을 지키기 위해 번거롭게 구는 재미는 해 본 사람만 알 거예요.


👀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생각한 적 있나요?

작은배 후원자를 위해 비공개 콘텐츠 <다음 주에도 할머니가 계셨으면 좋겠다>를 발행했습니다. 이후 ‘작은배를 타고’ 님이 남겨주신 후기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역시 공감만큼 큰 위로는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보내드린 레터에 대한 후기도 방명록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강단과 소신에게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메일로 답장 보내주셔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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