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목록] 책을 안 읽으면 생기는 일
2026년 6월, 활자와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구독자님들과 가볍고 단순하게 일상을 나누고 싶어서 [날것의 목록]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강단과 소신이 한 달 동안 보고, 겪고, 고민한 것을 목록 형식으로 간단히 기록하려 해요. 사사로운 이야기지만, 목록을 끝까지 읽고 나면 우리 사이는 더 가까워져 있을 거예요.
[날것의 목록]은 매달 한 번,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jagunbae.com에서도 다시 읽을 수 있어요.
📚 책을 안 읽으면 생기는 일
요즘 우리에게는 밤낮이 없다. 요일도 없다. 그저 아기가 배고프다고 하면 분유를 타고, 울음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기저귀를 확인하고, 하품 신호에 맞춰 재울 뿐이다. 세 시간 만이라도 푹 자봤으면 하고 소원하는 신세이다 보니,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원래도 엄청난 다독가는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활자와 먼 일상을 보내는 건 참 오랜만인 듯싶다. 활자 생활을 멈춘 지 한 달이 넘어가자 묘한 위기감이 든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전자책 서비스를 구독했다. 고요가 잠든 틈을 타 온라인 쇼핑하듯 이 책 저 책을 다운로드 받았지만, 아직 읽지는 않았다.
1️⃣ 늘어난 스크린타임
요즘 고요는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자는 재미에 푹 빠졌다. 잠든 것 같아 침대에 눕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울어버리는 통에 내내 안아서 재운다. 짧으면 한 시간에서 길면 두 시간까지 이어지는 낮잠. 이런 토막잠을 하루에 무려 네 번 넘게 잔다. 고요를 안고 암막 커튼을 친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올리는 일 밖에는.
지웠던 인스타그램, 유튜브 앱을 다시 다운로드 받았다. 한때는 #도파민단식 #디지털디톡스 #폴더폰 같은 키워드가 완전히 내 것인 시절이 있었는데. 심지어 인스타그램 3개월 안 하고도 잘만 살던 나였는데! 지금은 알고리즘이 인도해 주는 대로 짧은 영상을 빠르게 넘기면서 긴 새벽을 견딘다. 보더콜리의 똑똑한 재롱, 딸내미와 아빠의 웃긴 통화 내용, 파리 식당에서 겪은 인종차별 경험담.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화면 위로 휙휙 넘어간다. 효리수와 에픽카세를 알게 된 게 유일한 수확이라면 수확이랄까. 덕분에 많이 웃었다. 물론 고요가 깰까 봐 크게 웃지는 못했지만....
2️⃣ 좁아진 시야
책을 읽는 것보다 고르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우리의 단골 데이트 장소는 헌책방이었는데, 더미로 쌓여있는 책들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구미가 당기는 제목을 만나면 서로에게 보여주며 즐거워했다. 아는 작가의 오래된 책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처음 보는 책인데 마치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온 것처럼 마음에 쏙 드는 주제를 만나면 더 반가웠다. 그 책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이야깃거리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는데. 갑자기 머릿속 마인드맵에서 굵은 가지가 뻗어 나가기 시작하고 내가 사는 세계가 한 뼘 넓어진 기분이 든다.
세상에 재밌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서점에 가면 알 수 있다. 책장을 채운 무궁무진함에 비하면 내 눈앞의 현실은 어이없을만큼 작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아무리 부지런히 궁금해하고 들여다봐도 매번 새롭기만 한 세상이 저 밖에 있는데, 책을 읽지 않으면 이 당연한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만다. 요즘은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이 고요뿐인 듯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고요는 아주 소중한 존재지만, 아이가 부모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것이 고요에게도 꼭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3️⃣ 과거로의 여행
책을 읽으면 생각이 앞으로 간다. 읽을수록 똑똑해지거나 현명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책의 한 구절에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하고, 소설 속 주인공에게 이입해서 나라면 어떨까 떠올려보기도 한다. 책은 나를 상상하게 만든다. 빠르게 바뀔 미래 세대에 대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해, 터무니없어 보이는 가정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그려보면서 혼자 재밌어하거나 놀라워하는 것이 내가 느끼는 독서의 재미 중 하나다.
반면 가만히 고요를 안고 있으면 생각이 자꾸 과거로 간다. 책이 나를 상상하게 한다면, 요즘 하는 생각들은 회상에 가깝다. 얼마 전에는 서울 공릉동에 살 때 자주 가던 막창집이 갑자기 떠올랐다.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는 또띠아 피자가 맛깔스러워서 발길을 멈출 수가 없는, 막창보다 피자 때문에 단골이 된 이상한 식당이었다. 우연히 들렀던 동네의 작은 교차로, 여행지 구멍가게에서 먹었던 호떡, 퇴근길에 봤던 신기한 모양의 구름. '내가 이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고?' 싶은 보잘것 없는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아련하고 그립다. 그리고 재밌다.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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